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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 결말 후기 해석 리뷰

모나미연필 2017. 8. 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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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는 영화 피아니스트가 속해져 있는데 이는 2002년에 개봉한 영화에요. 영화 피아니스트에는 바스샤바 게토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에 대한 영화에요. 이 영화에 대한 특이점이 있다면 바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특정한 관점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인데, 로만 폴란스키다운 영화라고 할수도 없죠. 영화는 매우 겸손하고 지적인 태도로 만들어 졌고, 감독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생을 바쳐 만든 영화라는 것에 누구라도 동의를 할 듯 하네요.

영화 피아니스트의 프필만역에는 약 1400여명의 배우가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이 되었다고 해요. 애드리언은 이 연기를 위해서 피아노를 배웠으며, 약 6주간 다이어트를 했으며 이 영화를 통해 29세의 나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었죠. 또한 2003년 아카데미 3부분수상으로 4개부분 노미네이트가 되었다고 하네요.

사랑이 있기에 미래가 있다라는 말에 영화의 주제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전쟁도 거쳤고, 일제강점기 시절도 거친 한국으로서 영화 피아니스트는 굉장히 처절하고 감명깊게 다가왔어요. 주인공인 폴란드피아니스트 스필만은 나치가 점령을 한 후 가족과 집 모두를 잃게 되고 독일군들을 피해 집을 옮겨 다니며 근근히 살아가죠.

영화는 정말 치열하게 전쟁이 가지고 오는 참옥함을 연출없이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에 폭격과 함께 무너진 스튜디오와 전쟁에 폐허가 되어 더이상 피아노를 칠수 없는 스필만의 모습에서 음악은 매우 순수한 감성을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서 중간에 독일 장교가 스필만을 죽이려 하지만 살려 주었던 것은 그의 순수한 감성과 사랑을 피아노 치는 모습에서 느껴서 이죠. 전쟁과 상반되는 그런 감성을 느꼈기 때문에 독일장교는 음식과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도 벗어 주고 간것이 아닌가 싶네요.

음악을 더이상 하지 못하도록 집과 스튜디오가 모두 파괴가 되었다는 것은 내면의 안식처를 의미하는 집과 고향이 파괴었고, 사랑하는 이도 모두 잃게 되는 것을 뜻하죠. 스필만이 만나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 않죠. 계속 그들과 헤어지고, 안식처를 옮기는 모습에서 전쟁이란 이런 내면과 안식처 모두를 파괴하는 것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죠.

 

 

같은 구역에 합류한 일어느 부인이 독일군에게 들키지 않도록 울고 있는 아이의 입을 막다가 죽었다는 것은 전쟁으로 미래를 꿈꿀수가 없도록 되었다는 것을 뜻하죠. 희망과 미래가 존재하지 않고 생존본능만 있는 모습들이 나오죠. 그 와중에 돈에 눈이 멀어 동료를 저버리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전쟁은 미래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영화는 정말 참옥하리만큼 전쟁의 참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생지옥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참상이죠.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모두가 혼란스러운 모습들과 이유없이 유대인을 잡아 죽여버리는 독일군까지 말이에요.

스필만이 생존할 수 있게 먹을 것과 따뜻한 코트를 건네주었던 독일장교가 나오는데 스필만을 살려준 것은 위에서 말을 했듯 그의 피아노 음악이었죠. 정말 지옥같은 그런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뜻하는데, 결말에서 혹안 겨울이 지나고 푸르른 새싹이 돋아나는 들판은 전쟁이 끝나고 이젠 희망과 미래가 다가온다라는 것을 빗대어 볼 수 있는 것이죠. 스필만이 바라본 태양은 독일 장교의 사랑을 통해 미래를 바라 볼 수 있었다라는 비유가 아닐까 싶네요.

나치를 좀 좋게 비유를 했다는 점이 특이했던것 같아요. 이는 아마도 백인우월주의에 빠져 다른 인종을 증오하고 멸시했던 나치 처럼 증오로만 그들을 대한다면 그들과 똑같은 과거의 절망과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될 뿐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전쟁은 오직 피해자만 있을 뿐이죠. 미래에는 이런 욕망과 절망 지옥에서 벗어나야지만 진정한 미래가 있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결국 그 장교가 1952년에 사망을 한 것은 모두 피해자였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만행을 일으킨 독일군을 그저 마냥 용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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